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시험기간이라고 해서 사람이 적은줄 알았습니다만, 요즘 아이들은 시험에 그닥 영향을 받지 않나봐요.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시끌시끌한 국립중앙박물관, 인파를 해치고 뭘 구경할까 고민하던 중에 눈에 띄는 특별전이 보였습니다. '흉노' 특별전이었죠.

 

 

 

흉노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에서 2006년부터 조사한 몽골 헨티 아이막 도르릭나르스 흉노 무덤 중, 2009년, 2010년 및 2011년애 발굴조사한 총 길이가 54m가 넘는 대형무덤인 1호묘와 그 배장묘를 중심으로 발굴한 성과를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한국도 국내발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발굴을 나서는 듯 하는데요,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무덤을 직접 발굴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해외 발굴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흉노 무덤 발굴을 통해 한국도 해외에서 발굴실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절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

 

 

 

흉노 특별전 입구에 있는 큰 수레바퀴입니다. 이번 무덤 발굴에서 큰 수레바퀴를 발굴했거든요. 과거 수레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등자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레는 중요한 전쟁도구이기도 했는데요, 중국 춘추시대엔 수레를 타는 사람 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즉 높으신 양반들만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기에 소규모 전쟁이었죠.(전국시대로 가면 칼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수레바퀴를 이야기하다보니 흉노에 대한 설명을 지나칠뻔 했네요. ㅎ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5세기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내몽골자치구, 감숙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까지 지배했던 민족이었죠. 사마천 사기에는 흉노에 대한 기록-흉노열전이 남아있는데요, 그들의 풍습과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흉노를 매우 미개한 민족으로 묘사했는데요, 이는 농업국가인 한나라인이 바라본 유목민족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듯 합니다. 이를테면 젊은 사람을 우대하고 늙은 사람을 천시한다는 말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가축의 먹이에 따라 이동하는 흉노에게 있어서 힘쌔고 젊은 사람을 우대하는 것은 생존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개하고 예의를 모르는 것이라기 보단 살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이라는 것이 맞겠죠.

 

흉노는 세력을 키워가며 한나라와 자주 부딪칩니다. 전한(前漢) 초기 여후를 성희롱하는 편지를 보내 물의(?!)를 일으키는가 하면 위청, 곽거병과 같은 장군에게 토벌당하기도 합니다. 왕소군(춘래불사춘이라는 말로 유명한 분)이라는 어여쁜 처자가 흉노로 시집가면서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시대가 지나 우호관계가 끊어지자 투필종군(펜을 던지고 워커?!를 신는다. 붓을 던지고 군인이 되다)한 반초에게 다시금 토벌당하죠.

 

흉노는 유목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지역에 사는 터라 어느 한 곳에 머무를수 없습니다. 땅을 기반으로 거주하는 민족과 달리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항상 배가 고픕니다. 이에 때가 되면 중국 북부로 쳐들어와 약탈을 해갔던 것이죠.(약탈로 어느정도 생계를 꾸려가려면 젊고 건장한 남자가 필요하죠. 왜 나이든 사람을 천시 했는지 아시겠죠?)

 

이합집산이 심해서 쉽게 뭉칠수 없었던 흉노지만 종종 영웅이 등장해 강성한 나라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마천 사기의 흉노열전을 보면 묵돌선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마도 묵돌선우의 시대야말로 흉노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한 흉노의 무덤입니다. 특별전 전시관에 가보시면 발굴 당시 촬영한 사진을 연속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유목민족이라 해서 무덤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거대하고 웅장한 무덤들이 존재했더군요.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입니다. 구슬들도 잘 살펴보시면 여러모로 잘 가공되어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관에 붙어있었던 장식은 마치 옛날 대문에 달려있었던 문고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뭐랄까 귀면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네요. 잡귀야 물러가라며 눈을 부릅뜬 모습 같습니다. ㅎ

 

더 많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만,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직접 가셔서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진을 올리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멋진 옥벽도 있고, 서양인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멋진 금박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관도 있고요. 시간이 되신다면 꼭 가셔서 관람하셨으면 합니다. ^^ 참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은 흉노 무덤을 계속 발굴한다고 하니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많이 나올듯 합니다. 매우 매우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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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부터 먼저 보시죠.

 

 

 

불이 되어버린 사람(Human Torch, 그레그 마리노비치, 1991)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 케빈 카터, 1994)

 

매우 참혹한 광경이죠. 혹자는 말합니다. "얌마. 사진찍기 전에 저 사람들 구해야지!"라고. 사진기자로 현장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보도사진가의 임무는 현장에는 가장 가까이 가야 하지만, 반대로 현장을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보도사진가가 현장에 개입하는 하는 순간, 그는 사진가가 아닌 어떤 편에 속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때부터 사진촬영은 힘들어지죠.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봉화마을에는 많은 언론이 찾아왔는데요, 모 언론의 경우 사람들에 의해 쫒겨났다고 하죠.

 

영화 뱅뱅클럽에선 사진기자의 단면, 그리고 사진기자가 갖춰야할 덕목을 엿볼수 있습니다. 뱅뱅클럽의 일원인 그레그 마리노비치가 '횃불이 되어버린 사람'을 촬영할때 (영화 상에서) 그는 현장에 뛰어들려 하다가 낭패를 볼 뻔 합니다. 조리돌림하는 사람들을 말리려다 칼에 맞을뻔 하기도 했고, 촬영한 사진이 범죄현장을 촬영한 사진이라는 이유로 잠시 현장을 떠났어야 했죠. 이후 그레그 마리노비치는 현장에 가까이 가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촬영하는 사진기자가 됩니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 사진은  케빈 카터의 사진,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이죠.(독수리와 소녀로 많이 알려졌음, 하지만 퓰리쳐상 사진집에는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으로 나왔기에 그를 따름) 이 사진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담겨져 있지만, 우선 의무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이 사진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아이를 구했느냐 구하지 않았느냐입니다.

 

 

 

오! 주여...(영화 뱅뱅클럽 캡쳐)

 

케빈 카터는 아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할수 없었다는 것이 팩트죠. 당시 수단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겐 전염 위험 때문에 기근 희생자들을 만지지 못하게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뱅뱅클럽의 일원인 조아오 실버의 말에 따르면 쓰러진 수단아이는 어머니가 아이를 살짝 땅바닥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독수리는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아이 뒤에 있었던 독수리는 케빈 카터가 사진을 몇 장 촬영하자 날라가버렸다고 하네요.

 

사진기를 내려놓은, 사진기자가 아닌 인간 케빈 카터는 괴로웠을 겁니다. 영화 상에서 케빈 카터는 그런 괴로움을 받아들입니다.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으로 사람들에게 곤욕을 치르자 케빈은 뱅뱅클럽 동료 그레그 마리노비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레그. 그들의 말이 맞아. 전부 다. 전부 그러잖아. 이게 우리의 일이라고. 사람들 죽어나가는거 쳐다만 보는게. 그 말이 맞아."

 

그레그 앞에선 이런 말을 했지만 케빈 카터에겐 보도사진가로서의 자부심 또한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상의)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좋은 사진이라 함은..논란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니니까요. 저는 저나 그레그나 마찬가집니다. 분쟁 지역에서 나쁜 것들을 보게 되면, 그러니까 많은 악행들 말이죠. 사명감이 생깁니다. 사진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요."

 

 

 

 

뱅뱅클럽의 두 사진기자가 희생당하는 모습.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이 사진은 분쟁지역 보도사진가들의 리얼한 모습을 담고 있다

(상단 : 켄 오스터브록의 마지막 모습. 하단 : 총상을 입은 그레그 마리노비치)

 

한겨레 신문 곽윤섭 사진기자의 말에 따르면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보도 사진가는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데요, 그 이유는 보수가 많아서,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은 더욱 아니라고 합니다. 끔찍한 비극을 막기 위함이죠. 앞서 케빈 카터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이야말로 분쟁지역의 보도 사진가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뱅뱅클럽의 배우들과 실제 뱅뱅클럽의 주인공들

 

영화 내용은 그닥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보시는게 좋죠.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끄적거려 봤습니다. 한때 보도사진 기자를 했었고, 다시금 보도사진 기자로 복귀하고 싶은 제가 느낀 점 말이죠. 그나저나 케빈 카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은 어서 빨리 고쳐졌으면 합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죽지 않았고, 케빈 카터는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으며-보도사진가로서 도와줘서도 안되고- 사진으로 인해 자살한 것이 아니란걸 말이죠.

 

참고 : 퓰리쳐상 사진집, 중앙일보, 2010

         후지와라 아키오 지음·조양욱 옮김,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 예담, 2007

         사진마을, 다시 케빈 카터를 위한 변명, 2008, 2,15, http://photovil.hani.co.kr/45164

         뱅뱅클럽, 스티븐 실버 감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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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S 100D를 만져봤습니다. 주변에 아시는 분께서 100D를 손에 넣으셨다고 해서 함 보여달라고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ㅎ 바쁘신 분이셨는데요, 잠시 커피 한잔 하면서 구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 만져봤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100D에 대한 인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0D의 크기는 정말 작습니다. EOS 5D Mark III와 비교해봤는데요, 현저히 차이가 나죠? 일부러 크기를 비교해보기 위해 동일한 렌즈(40mm)를 마운트 시켰습니다.

 

 

 

가로 길이를 가늠해보실수 있도록 제 아이폰5를 직접 대보았습니다. 헐~ 가로 길이가 제 아이폰5보다도 짧습니다. 정말 작죠?

 

 

100D의 후면부, 아이폰 5보다 작지만 LCD는 큰 편입니다. 필요한 버튼들도 모두 갖춰져 있고요. 이번 100D에 대해서 놀랐던 점은 동영상이 정말 좋아졌다는 겁니다. 100D에는 고속 AF를 위한 하이브리드 CMOS AF II가 장착되었다고 하는데요, 직접 사용해보니 라이브뷰 동영상 촬영 기능이 많이 향상되었더군요. AF속도는 많이 빨라지고, 정확도도 비교적 좋아졌습니다.

 

 

무게를 위해 밧데리도 기존 캐논의 DSLR보다 크기를 줄였습니다. 메모리 카드는 요즘 많이 사용하는 SD카드죠.

 

 

 

성인 남자가 손으로 쥐었을때 그립 부분에 손가락이 남습니다. 손이 큰 분은 손가락 2개가 남을 정도죠. 세 손가락으로 쥐어도 쉽게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볍습니다.(물론 렌즈에 따라 무게는 달라지겠죠)

 

 

 

정리를 해볼까요? 100D가 경쟁상대로 하는 기종은 미러리스와 하이브리드 계열의 카메라입니다. 렌즈 교환이 가능하고 여성이 주로 사용하며 사진 촬영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겐 서브 카메라로 인식되는 기종이죠.

 

100D가 기존에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와 차별화 되는건 DSLR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광학뷰파인더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크기와 무게를 확 줄였다는 점입니다. 기존 캐논 DSLR 카메라를 갖고 있는 분이라면 렌즈를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고, 사용법도 다르지 않아 매우 편리합니다. 예전에 파나소닉의 GX1을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요, 사용법도 그렇고 손에 익지 않아서 얼마 되지 않아 팔아버렸습니다. 100D라면 이야기가 달라질수 있겠네요. ㅎ

 

단점으로 지적할 부분은 기능적인 부분(CMOS 센서 크기, 연사 매수, 촛점 영역 등)에 있어선 기존 미러리스에 뒤지는 모습입니다. 혹여 가격이 10만원 정도 저렴했다면 시장을 휩쓸었을 수도 있었다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그래도 미러리스, 서브 카메라 영역에 처음 발을 내딛는 캐논 카메라가 이정도면 많이 노력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네요.

 

만약 서브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 녀석, EOS-100D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허나 그날이 언제 올런지는 아무도 모르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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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에 대한 수요는 많아진지 오래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초반에는 라이프라는 사진잡지가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기도 했지요. 포토뉴스의 수요 증가는 포토뉴스의 캡션 내용 또한 중요해집니다. 독자의 이목을 끄는 것과 더불어 정확성도 함께 담보되어야겠죠. 

역사와 함께 발육하는 보도사진이라는 책을 봤더니 사진 캡션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정리를 해놓았더군요. AP통신사 연구위원회의 이야기와 책 저자가 덧붙여 말한 내용을 적어봅니다.

 

AP통신사 연구위원회

1. 완전하게 표현되었는가?
2. 사진을 빠짐없이 정확하게 설명하였는가?
3. 언제 작성되었나?
4. 어디서 작성하였나?
5.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6. 이름들은 정확히 기재하였나?
7. 구체적인가?
8. 읽기 쉽게 작성되었는가?
9. 쓸데 없는 표현은 없는가?
10. 그 사진 이외의 다른 사진을 연상할 수 있는가?

저자 덧붙임

1. 캡션의 속성을 기억하라. 뉴스기사보다 캡션은 더 많은 주시를 받는다.
2. 진부한 표현을 피해라.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좋은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한다.
3. 길고 복잡한 문장은 피해라.
4. 뉴스 기사를 캡션속에서 반복하지 말라. 중요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간결히 표현하라.
5. 사진과 캡션을 뉴스 기사의 증빙자료로써 항상 동일시해야 한다. 바뀌거나 섞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6. 유머러스한 사건에는 재치있는 표현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심각한 주제의 경우에는 장난스러운 표현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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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마츠 코지.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감독. 야쿠자 출신의 감독. 일본이라는 나라를 가장 중립적인 입장으로 바라볼줄 아는 감독. 그래서 일본 우익과 (과거) 좌익에게 모두 칭송받는 감독.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도쿄전력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파해친다는 약속을 듣고 나는 감동했다. 그랬던 그가 작년 10월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슬프고 아쉬울 따름이다. 도쿄전력 다음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는데...일본인이 중립적으로 본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 정말 보고 싶었는데...


故 와카마츠 코지 감독.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若松 孝二(わかまつ こうじ、1936年4月1日 - 2012年10月1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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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r Jang

분류없음 2013.04.15 00:41

 

 

어느 한가한 오후. With Designer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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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드릴 파이터는 재일교포 파이터 보쿠코우테츠-박광철 선수입니다. 박광철 선수는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의 도장 킬러비(요즘은 크레이지비라고 이름이 바뀌었네요)의 2인자입니다. 최근에는 ONE FC라는 단체의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조만간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오지게 욕을 먹고 있는 '응가' 아오키 신야 선수와의 대결이라고 하네요.


박광철 선수하곤 나름 인연이 있습니다. 기자시절 해외 기사를 훑어보다가 슈토에 출전하는 선수 가운데 한국이름을 발견했죠. 보쿠코우테츠, 당시엔 일본어를 잘 못했지만 저 발음이 한자를 그대로 발음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킬러비 도장에 국제전화를 했고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인터뷰를 했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나중에 일본에 갔을때는 직접 경기를 촬영하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죠. 


무엇보다 박광철 선수가 정이 갔던 것은 한국 사랑이었습니다.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박광철'이라는 이름을 갖고 산다는 것, 그리고 2004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건 격투계에선 알려진 사실입니다.(그는 제가 있던 격투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50살이 되어도 한국 국적을 선택해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죠) 그의 몸에는 문신이 많습니다. 왼쪽 가슴에는 거북선이, 왼쪽 팔에는 호랑이 얼굴이 손잡이인 비파형 동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조만간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는 박광철 선수, 꼭 승리해서 타이틀을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과거 한국에 격투기 붐이 일었을때는 재일교포 파이터에 다한 끊임없는 관심이 있었는데요, 격투기 인기가 식어가면서 그것조차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네요. 그나마 한국에서 "연예"활동을 하는 추성훈 선수만이 부각되는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합니다. 지금 사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 K-1에서 활동했으며 최홍만의 트레이너였던 킨타이에이-김태영나 오오히가시 아키라-신영욱씨에 대한 소식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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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MMA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때 MMA 경기장 여기저기에선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라운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관람객들이 야유를 보냈던 것이죠. MMA가 기존 격투기와 다른 것은 상대 선수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반칙이 아닌 이상 왠만한 상황은 모두 인정해준다는 점입니다. 복싱, 태권도에 익숙했던 한국인에게 누워서 하는 경기는 기껏해야 4년에 한번 하는 올림픽에서나 봤던 것(유도, 레슬링)이었습니다. 요즘에는 MMA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아지고, 주짓수나 MMA를 수련하는 인구도 늘어나면서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는 전보다 많이 높아졌죠.


MMA에서 왜 그라운드를 가려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입식 타격보단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좋은 선수라면 그라운드 상황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그라운드 상황에 가려 하겠죠. 그라운드 상황으로 가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쓸까요? 스스로 누워서 기다릴까요? 안됩니다. 그건 이미 안토니오 이노키가 무하마드 알리와의 경기에서 써먹고 완전 욕먹었죠.(그래서 한 사람이 서있고 한 사람이 누워있는 상황을 이노키-알리 자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ㅋㅋ)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미 답을 아실겁니다. 그렇죠. 테이크다운(Take down)입니다. 테이크다운은 원래 레슬링 용어로 두 선수가 서로 맞붙은 스탠드-서있는 자세에서 태클 등의 기술을 걸어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엉덩방아를 찧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레슬링, MMA에서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면 점수를 얻습니다. 


MMA에서 테이크다운은 일반적으로 한 다리를 잡고 넘어뜨리는 싱글 렉 테이크다운(Single leg takedown)과 두 다리를 잡고 넘어뜨리는 더블 렉 테이크다운(Double leg takedown)이 있습니다. 사람을 서있게 하는 건 두 다리입니다. 아무리 중심을 잘 잡는 사람일지라도 다리를 잡고 중심을 흐트려뜨린다면 당연히 넘어지겠죠? 이렇듯 테이크다운은 그라운드로 가기위한 매우 중요한 관문입니다. 그라운드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는 테이크 다운에도 능하죠.


그렇다면 입식 타격에 능한 사람은 테이크다운에 무방비로 당해야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테이크다운을 저지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스프럴(sprawl)이란 기술입니다. 스프럴은 말 그대로 팔 다리를 뻗는 행위인데요, 테이크다운 공격을 받았을때 무게중심을 상대 선수쪽으로 향하면서 두 다리를 뒤로 쭉 뻗습니다. 스프럴이 성공하면 테이크다운 공격자는 방어하는 사람 아래에 깔리게 되고 스프럴로 방어한 사람은 쉽게 일어날수 있는 자세가 됩니다. 


참! 입식에도 테이크다운 공격이 있는 단체가 있습니다. 중국의 산다나 일본의 슛복싱이란 단체들이 그런데요, 테이크다운을 통해 상대방을 던지거나 넘어뜨리면 점수를 줍니다. ^^


말이 많았네요. 사진 보시면서 확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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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마사토라는 선수에 대해 아시나요? K-1 MAX를 즐겨보셨던 분이라면 잘 아시겠죠? K-1 MAX는 2002년에 시작된 K-1의 미들급(70kg) 대회인데요, 마사토는 여기서 일본인 최초 K-1 MAX 챔피언이 되었으며 2003, 2008년 2회 우승한 저력있는 선수입니다.


예전에는 마사토라는 선수, 그닥 높게 보지 않았답니다. 안방에서 우승하는 선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려놓는 선수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마사토라는 선수를 쭉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는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선수에게 꼭 승리를 거두는 집념의 사나이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기는 낙무아이(무에타이 선수) 쁘아까오 포프라묵에게 거둔 승리였죠.마사토는 2004년 K-1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낙무아이 쁘아까오에게 처절한 판정패를 당합니다. 당시 마사토를 보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낄정도로 쁘아까오에게 구타 당합니다. (얼굴이 떡이 되어 부었어도 물러나지 않는 마사토가 참...) 2004년에 겪은 쁘아까오에게 겪은 수모는 2007년 판정승으로 갚아 줍니다. 마사토는 2004년보다 훨씬 발전했고, 심지어 쁘아까오 얼굴에 정타를 날리며 다운을 뺏어내기도 합니다. 


끝없이 노력하며 달려온 마사토는 2009년 12월 3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은퇴 경기 상대는 K-1 MAX의 또 다른 강자 앤디 사워였죠. 경기는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만 위키피디아를 보니 비등비등했나보네요. 


제가 촬영한 마사토의 사진은 2004년 12월 31일 K-1 PREMIUM 2004 Dynamite!! 경기 밖에 없네요.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와 세기의 대결에서 초반 다운을 빼앗긴 마사토는 금새 경기를 반전시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세기의 대결, 일본인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당시 야먀모토 키드는 MMA 선수-그것도 레슬링 베이스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타격능력을 보여줬죠. 종종 K-1 MAX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마사토 만한 선수가 나올까요? 지금으로 봐선 그닥 쉽진 않아 보입니다. 들려오는 소식도 그렇구요...히로야라는 아이가 마사토의 후예니 어쩌니 했는데...조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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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요즘 MMA경기에선 볼수 없는 기술 가운데 스탬핑(stamping)이 있습니다. 스탬핑이란 기술은 말 그대로, 누워있는 상대를 향해 힘껏 도약하여(혹은 다리를 높에 쳐들어) 사뿐히 즈려밟는(?!) 기술입니다. 스탬핑이 문제가 되는 건, 주로 머리를 노리기 때문이죠. 발로 머리를 즈려밟는다....위험하긴 위험하죠? ^^;;;;;


스탬핑은 과거 프라이드FC 등등에서 볼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기술이었습니다. 과거 슈트박스 아카데미 선수들-마우리시오 후아(쇼군으로 더 유명하죠), 반더레이 실바 등이 자주 썼던 기술입니다. 일본인 선수들이 많이 희생되었죠.


스탬핑은 지금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유명 MMA 단체에선(특히 미국) 금지하고 있는 기술입니다. 과거 프라이드FC의 영향을 받은 한국 MMA에서도 스탬핑은 존재했습니다. 스피릿MC를 비롯한 몇몇 단체의 경기에선 스탬핑을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요즘 단체에선 스탬핑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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