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이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키보드 선, 마우스 선, USB 선들이 난장판으로 늘어져 있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키보드, 마우스 선만 어떻게 없애보자는 마음에 무선 키보드 마우스 콤보를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몇일간 인터넷을 뒤져보고, 지인들에게 여쭤본 결과 로지텍 MK220으로 결정했습니다.

 

 

 

MK220의 구성입니다. 키보드, 마우스, USB리시버, AA밧데리 2개, AAA밧데리 2개가 들어있습니다. 마우스와 키보드 각각에 밧데리를 넣고 USB 리시버를 끼우면 별도의 스위치 ON/OFF 없이 자동으로 인식합니다.

 

 

밧데리의 수명은 긴 편이라고 하는데요, 로지텍의 광고물을 보면 키보드는 24개월, 마우스는 5개월동안 밧데리 교환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인분께서 지적해준 MK220의 단점입니다. Caps Lock의 경우야 그렇다쳐도 Num Lock의 LED가 없어 햇갈린다고 하시더군요. 왠만한 키보드엔 Caps Lock과 Num Lock LED는 다 있죠.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론 생각만큼 햇갈리지 않아 큰 불편없이 사용합니다.

 

 

 

 

MK220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보다 36% 작다고 하는데요, 대신 기존의 키보드 기능을 넣기 위해 FN키를 추가 했습니다. 스크린 캡쳐를 사용하는 분들에겐 불편이 덜 하실듯 합니다.

 

 

MK220의 마우스입니다. 마우스의 첫 인상은 왠지 가벼울것 같았는데요, 의외로 묵직해서 좋았습니다. 아마도 AA밧데리 2개가 그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

 

이 부분은 다른 분도 지적했고 저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밧데리를 넣고 마우스를 가동해도 빛이 나오지 않습니다. ㅠㅠ 처음엔 망가졌나 생각했는데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원래 빛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뭐랄까 이 부분만큼은 덜 햇갈리도록 빛이 나왔으면 했는데...정말 아쉽습니다.

 

MK220 키보드와 마우스 인식 속도는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스타크래프트2를 할때 약간의 지연이 있는데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거나, 문서 작성을 할때는 지연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즘 게임도 많이 하지 않는 저로선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MK200 키보드 마우스 컴보. 2만원대 초반이라는 저렴한 가격(2013년 5월 13일 구입당시), 적당한 크기의 키보드와 비교적 묵직한 마우스, 작업시 지연현상이 덜함 등을 보건데 가격대 성능비는 월등히 좋은 듯 합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단점들이 걸리는 분들께선 좀 더 투자하셔서 3만원대 키보드 마우스 컴보를 구입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로지텍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안드로이드 태블릿 용으로 크기를 더 줄인 키보드 마우스 컴보를 내놓았으면 합니다. 밧데리 많이 먹는 블루투스보다 USB OTG를 이용한 키보드 마우스 컴보를 내놓으면 태블릿에서도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을듯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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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오랜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시험기간이라고 해서 사람이 적은줄 알았습니다만, 요즘 아이들은 시험에 그닥 영향을 받지 않나봐요. 초등학생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시끌시끌한 국립중앙박물관, 인파를 해치고 뭘 구경할까 고민하던 중에 눈에 띄는 특별전이 보였습니다. '흉노' 특별전이었죠.

 

 

 

흉노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에서 2006년부터 조사한 몽골 헨티 아이막 도르릭나르스 흉노 무덤 중, 2009년, 2010년 및 2011년애 발굴조사한 총 길이가 54m가 넘는 대형무덤인 1호묘와 그 배장묘를 중심으로 발굴한 성과를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한국도 국내발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발굴을 나서는 듯 하는데요,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무덤을 직접 발굴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해외 발굴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흉노 무덤 발굴을 통해 한국도 해외에서 발굴실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절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

 

 

 

흉노 특별전 입구에 있는 큰 수레바퀴입니다. 이번 무덤 발굴에서 큰 수레바퀴를 발굴했거든요. 과거 수레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등자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레는 중요한 전쟁도구이기도 했는데요, 중국 춘추시대엔 수레를 타는 사람 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즉 높으신 양반들만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기에 소규모 전쟁이었죠.(전국시대로 가면 칼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수레바퀴를 이야기하다보니 흉노에 대한 설명을 지나칠뻔 했네요. ㅎ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5세기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내몽골자치구, 감숙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까지 지배했던 민족이었죠. 사마천 사기에는 흉노에 대한 기록-흉노열전이 남아있는데요, 그들의 풍습과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흉노를 매우 미개한 민족으로 묘사했는데요, 이는 농업국가인 한나라인이 바라본 유목민족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듯 합니다. 이를테면 젊은 사람을 우대하고 늙은 사람을 천시한다는 말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가축의 먹이에 따라 이동하는 흉노에게 있어서 힘쌔고 젊은 사람을 우대하는 것은 생존문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개하고 예의를 모르는 것이라기 보단 살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이라는 것이 맞겠죠.

 

흉노는 세력을 키워가며 한나라와 자주 부딪칩니다. 전한(前漢) 초기 여후를 성희롱하는 편지를 보내 물의(?!)를 일으키는가 하면 위청, 곽거병과 같은 장군에게 토벌당하기도 합니다. 왕소군(춘래불사춘이라는 말로 유명한 분)이라는 어여쁜 처자가 흉노로 시집가면서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시대가 지나 우호관계가 끊어지자 투필종군(펜을 던지고 워커?!를 신는다. 붓을 던지고 군인이 되다)한 반초에게 다시금 토벌당하죠.

 

흉노는 유목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지역에 사는 터라 어느 한 곳에 머무를수 없습니다. 땅을 기반으로 거주하는 민족과 달리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항상 배가 고픕니다. 이에 때가 되면 중국 북부로 쳐들어와 약탈을 해갔던 것이죠.(약탈로 어느정도 생계를 꾸려가려면 젊고 건장한 남자가 필요하죠. 왜 나이든 사람을 천시 했는지 아시겠죠?)

 

이합집산이 심해서 쉽게 뭉칠수 없었던 흉노지만 종종 영웅이 등장해 강성한 나라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마천 사기의 흉노열전을 보면 묵돌선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마도 묵돌선우의 시대야말로 흉노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한 흉노의 무덤입니다. 특별전 전시관에 가보시면 발굴 당시 촬영한 사진을 연속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유목민족이라 해서 무덤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거대하고 웅장한 무덤들이 존재했더군요.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입니다. 구슬들도 잘 살펴보시면 여러모로 잘 가공되어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관에 붙어있었던 장식은 마치 옛날 대문에 달려있었던 문고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뭐랄까 귀면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네요. 잡귀야 물러가라며 눈을 부릅뜬 모습 같습니다. ㅎ

 

더 많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만,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직접 가셔서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진을 올리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멋진 옥벽도 있고, 서양인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멋진 금박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관도 있고요. 시간이 되신다면 꼭 가셔서 관람하셨으면 합니다. ^^ 참고로 국립중앙박물관은 흉노 무덤을 계속 발굴한다고 하니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많이 나올듯 합니다. 매우 매우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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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부터 먼저 보시죠.

 

 

 

불이 되어버린 사람(Human Torch, 그레그 마리노비치, 1991)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Waiting game for Sudanese child, 케빈 카터, 1994)

 

매우 참혹한 광경이죠. 혹자는 말합니다. "얌마. 사진찍기 전에 저 사람들 구해야지!"라고. 사진기자로 현장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보도사진가의 임무는 현장에는 가장 가까이 가야 하지만, 반대로 현장을 건드려서는 안됩니다. 보도사진가가 현장에 개입하는 하는 순간, 그는 사진가가 아닌 어떤 편에 속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때부터 사진촬영은 힘들어지죠.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봉화마을에는 많은 언론이 찾아왔는데요, 모 언론의 경우 사람들에 의해 쫒겨났다고 하죠.

 

영화 뱅뱅클럽에선 사진기자의 단면, 그리고 사진기자가 갖춰야할 덕목을 엿볼수 있습니다. 뱅뱅클럽의 일원인 그레그 마리노비치가 '횃불이 되어버린 사람'을 촬영할때 (영화 상에서) 그는 현장에 뛰어들려 하다가 낭패를 볼 뻔 합니다. 조리돌림하는 사람들을 말리려다 칼에 맞을뻔 하기도 했고, 촬영한 사진이 범죄현장을 촬영한 사진이라는 이유로 잠시 현장을 떠났어야 했죠. 이후 그레그 마리노비치는 현장에 가까이 가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촬영하는 사진기자가 됩니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 사진은  케빈 카터의 사진,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이죠.(독수리와 소녀로 많이 알려졌음, 하지만 퓰리쳐상 사진집에는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으로 나왔기에 그를 따름) 이 사진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담겨져 있지만, 우선 의무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이 사진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아이를 구했느냐 구하지 않았느냐입니다.

 

 

 

오! 주여...(영화 뱅뱅클럽 캡쳐)

 

케빈 카터는 아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할수 없었다는 것이 팩트죠. 당시 수단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겐 전염 위험 때문에 기근 희생자들을 만지지 못하게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뱅뱅클럽의 일원인 조아오 실버의 말에 따르면 쓰러진 수단아이는 어머니가 아이를 살짝 땅바닥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독수리는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아이 뒤에 있었던 독수리는 케빈 카터가 사진을 몇 장 촬영하자 날라가버렸다고 하네요.

 

사진기를 내려놓은, 사진기자가 아닌 인간 케빈 카터는 괴로웠을 겁니다. 영화 상에서 케빈 카터는 그런 괴로움을 받아들입니다.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으로 사람들에게 곤욕을 치르자 케빈은 뱅뱅클럽 동료 그레그 마리노비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레그. 그들의 말이 맞아. 전부 다. 전부 그러잖아. 이게 우리의 일이라고. 사람들 죽어나가는거 쳐다만 보는게. 그 말이 맞아."

 

그레그 앞에선 이런 말을 했지만 케빈 카터에겐 보도사진가로서의 자부심 또한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상의)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좋은 사진이라 함은..논란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니니까요. 저는 저나 그레그나 마찬가집니다. 분쟁 지역에서 나쁜 것들을 보게 되면, 그러니까 많은 악행들 말이죠. 사명감이 생깁니다. 사진으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요."

 

 

 

 

뱅뱅클럽의 두 사진기자가 희생당하는 모습.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이 사진은 분쟁지역 보도사진가들의 리얼한 모습을 담고 있다

(상단 : 켄 오스터브록의 마지막 모습. 하단 : 총상을 입은 그레그 마리노비치)

 

한겨레 신문 곽윤섭 사진기자의 말에 따르면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는 보도 사진가는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데요, 그 이유는 보수가 많아서, 좋은 사진을 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은 더욱 아니라고 합니다. 끔찍한 비극을 막기 위함이죠. 앞서 케빈 카터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이야말로 분쟁지역의 보도 사진가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뱅뱅클럽의 배우들과 실제 뱅뱅클럽의 주인공들

 

영화 내용은 그닥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보시는게 좋죠.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끄적거려 봤습니다. 한때 보도사진 기자를 했었고, 다시금 보도사진 기자로 복귀하고 싶은 제가 느낀 점 말이죠. 그나저나 케빈 카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은 어서 빨리 고쳐졌으면 합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죽지 않았고, 케빈 카터는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으며-보도사진가로서 도와줘서도 안되고- 사진으로 인해 자살한 것이 아니란걸 말이죠.

 

참고 : 퓰리쳐상 사진집, 중앙일보, 2010

         후지와라 아키오 지음·조양욱 옮김,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 예담, 2007

         사진마을, 다시 케빈 카터를 위한 변명, 2008, 2,15, http://photovil.hani.co.kr/45164

         뱅뱅클럽, 스티븐 실버 감독,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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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아~ 정말 오랜만에 한성백제유적 탐험기를 포스팅 합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저번 포스팅에 몽촌토성까지 소개해드렸죠? 몽촌토성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을 종종 뵈었는데요, 어찌 많이 도움이 되셨는지요? ^^ 지난 포스팅이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한 번 복기해드려야겠네요. ㅎ 풍납토성에서 관리인분께 한성백제 유적을 여쭈어봤더랬죠?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셨습니다.

 

 

유적이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하네요. ㅠㅠ 함께 같이 있었으면 했는데 말이죠. ㅠㅠ 일단 북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게 왠지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별 이유는 없었습니다. ㅎ 암튼 북쪽으로 열심히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를 만나서 뭔가 아시는 것 있으신가 여쭈어봤습니다.

 

 

 

응? 근처에 무슨 둔덕이 있다고 하네요. 둔덕이라....혹시 제가 찾는 그것인듯 했습니다. 아저씨가 가르쳐주시는 방향으로 가봤죠. 그랬더니!!

 

 


으아~ 풍납토성을 발견했습니다~ ㅎㅎㅎㅎㅎ 몽촌토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시지 않나요? 풍납토성은 몽촌토성과 달리 이런 저런 사연을 갖고 있는 토성이랍니다. 풍납토성의 원래 이름은 광주풍납리토성인데요, 풍납동이 과거 경기도 광주에 속해있었는데요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풍납토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풍납토성의 운명은 어찌보면 기구합니다. 1925년에 서쪽 벽이 홍수로 유실되었고, 강남개발시기엔 제대로된 발굴 한번 해보지 못하고 아파트가 들어섰죠. 1925년 홍수때 몇몇 유물이 발견되었고 1964년 시굴조사를 통해 철기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진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 풍납토성내에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실측조사가 실시되는 도중, 백제토기 등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어 긴급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백제 초기 집자리, 토기 가마, 무덤 등 백제 초기 생활상을 밝혀줄 중요한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되었죠. 이 발굴을 계기로 풍납토성 내부에 대한 사전조사가 의무화되어 아파트 재건축에 따른 시굴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어졌다고 합니다.(현재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건설공사의 시행자는 해당 건성공사 지역에 문화재가 매장 및 분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전에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풍납토성 발굴 이후로 이 법이 생겼는지는 확인 할 수 없네요. ㅠㅠ 나중에 알게 되면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

 

이후 풍납토성은 여러 발굴기관을 통해 발굴되어 다량의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풍납토성이 어떤 기법으로 축조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의 왕성, 그러니까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위례성이라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납토성은 지금도 발굴조사가 계속 되고 있는데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2000년에는 문화재청과 재개발 사업자와 주민의 보상비 문제로 주민들이 발굴현장을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2006년에는 해자 추정지에 수천톤의 쓰레기가 매립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등, 풍납토성은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초기 백제의 유적으로 위례성으로 추정될 만큼 중요도가 높은 풍납토성이지만 사람들에겐 그리 이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씁쓸한 현실이죠.

 

 

 

 

풍납토성 근처에는 주민들께서 산책을 하시거나 봄기운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몇몇 아주머니께선 토성에 자라고 있는 쑥갓을 뜯기도 하셨죠.

 

 

 

 

 

풍납토성은 몽촌토성과 달리 중간 중간이 자주 끊겨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풍납토성 주변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게 되었고 토성 중간 중간을 끊고 길을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생긴 일이죠.

 

토성을 걷다보니 기와편인지 뭔지 하는 것도 종종 보였습니다. 고고학자가 아니라서 어떤 조각인지는 말씀드리기 힘드네요. ㅠㅠ

 

씁쓸한 풍납토성을 뒤로하고 한성백제 유적 탐험의 마지막 행선지로 출발했습니다. 지금까진 성곽을 소개해드렸습니다만, 이번에는 무덤입니다. 그 동네는 돌로된 무덤이 많아서 동네이름도 돌과 관련이 있다죠. ㅎ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풍납토성의 대략적인 위치. 빨간 선이 그어진 곳이 토성이 있는 곳입니다만, 중간 중간 끊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난 포스팅 : 한성백제유적 탐험기, 한성백제유적 탐험기 - 몽촌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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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

 

 

100D를 갖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에 모 인터넷 방송을 들어보니 어떤 철학박사께서 인생에 있어서 제대로된 여행(한 달이상 돌아다니는)을 한 번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너무 일찍 사회에 뛰어든 20대부터 저는 제대로된 여행한 번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일과 술에 찌들어 살다가 최근에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여정이라면 걸어서 한반도 남쪽 끝을 가보려 합니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릅니다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합니다. 걸어다니면서 제 눈으로 본 것들,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할 예정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살았던 아우구스트 잔더가 남긴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진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우구스트 잔더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만, 제 여정을 통해 얻은 사진이 의미 있었으면 합니다. 그 여정에 EOS 100D가 함께 했으면 합니다.

 

여행을 떠날때는 정말 필요한 몇몇만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어떤 분은 검은 봉지 하나만 들고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여정에 있어서 카메라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 여정을 가볍게 하는 EOS 100D를 동반자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 캐논 100D 스크랩 이벤트 응모 포스팅입니다. 100D에 대해 잘 리뷰해주신 것 같아 스크랩합니다. 다만 네이버라 일일이 캡쳐했어요. ㅠㅠ

원문을 확인하실 분은 여기로 가세요.  ^^ 참~ 스크랩 이벤트에 참여하실 분들께선 여기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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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비잡학